▲ 4점 굽힘 시험 장면. 아피즈 상수도관은 코넬대 보유 설비로는 유일하게 누수되거나 파괴되지 않았다.
경주, 포항 지진으로 한반도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우려가 계속되는 가운데, 규모 7.1 강진에도 변형되지 않는 상수도관이 나왔다.
지진이 발생하면 지반이 흔들리며 땅속의 상수도관이 파열되기도 한다. 이로 인해 단수뿐 아니라 2차 사고로 이어져 위험하다. 지난 2017년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환여공원 인근 도로 상수도관이 파열돼 도로가 물바다로 변한 바 있다. 지난 2016년 울산에서 지진이 발생한 이후 상수도관 균열로 누수가 생기며 부산 등 인근 지역에서 크고 작은 싱크홀이 속출하기도 했다. 국내 대표 배관 자재 생산업체인 PPI평화는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 지진에 강한 상수도관 ‘아피즈(APPIZ)’를 개발, 성능을 인정받았다.
아피즈는 폴리아크릴러버 공중합체 소재로 만들어 기존 PVC 소재 대비 인장강도, 낙추충격강도, 장기내수압이 크게 향상됐다. PPI평화와 코넬대는 내진 성능 공동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지진유도 지반변형에 의한 아피즈 파이프의 성능 평가’를 진행했다. 코넬대는 세계적으로 지진과 관련한 실험으로 가장 권위있는 기관으로 글로벌 상수도관 제조사가 실험을 통해 성능을 인정받으려 경쟁한다.
이번 실험에는 캘리포니아주정부 이스트베이 수도국(이하 수도국)도 참여했다. 이곳은 캘리포니아주 이스트베이 지역의 140만명에게 수돗물을 공급하는 기관으로 2018년 2개 현장에 아피즈 상수도관을 시공했다. 아피즈 상수도관이 적용된 현장은 1990년 이후 부식과 지질 운동으로 70여차례 상수도관이 파손된 곳으로 기존에 매설된 주철관을 아피즈 상수도관으로 대체했다. 총 11㎞ 길이의 아피즈 상수도관이 시공됐는데, 코넬대와의 공동 연구 결과를 직접 확인하고자 참여했다.
실험은 2017년 2월부터 2019년 1월까지 3단계에 걸쳐 진행했다. 1단계에서는 파이프 자체의 내구성을 시험하고 2단계에서는 파이프라인을 당기거나 누르는 외부 힘에 견디는 정도를 측정했다. 3단계에서는 실제 파이프라인을 땅속에 매립하고 물도 채운 후 옆방향에서 지반 균열을 일으켰을 때 얼마나 버티는지 확인했다.
특히 눈길을 끈 실험 결과는 4점 굽힘 시험에서 나왔다. 4점 굽힘 시험은 상수도관 양끝에서 밀거나 위에서 누루는 시험으로 내수압이 떨어지지 않고 누수도 없었다. 실험을 주도한 코넬대에서 아피즈 상수도관을 어떻게든 깨보려고 극한까지 실험했지만, 코넬대가 보유한 설비로는 파괴에 실패하자 대단한 물성이라고 감탄했다는 후문이다.
실제 지진 상황과 같은 조건에서 진행한 대규모 지반 균열 시험에서도 아피즈의 성능을 증명해냈다. 대규모 지반 균열 시험은 아피즈 상수도관을 깊이 2.3m, 폭 3.2m 지반에 총 12m 길이로 매립해서 진행했다. 상수도관 안에는 물을 채워 552kPa 수준의 내수압을 유지한다. 일반적으로 타이어 표준 공기압이 210kPa인 것을 감안하면 2배 이상의 내부 압력이 가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내수압이 떨어질 때까지 1분당 지반이 55㎜가량 균열되도록 힘을 가한다. 단순히 파이프를 파괴하는 것을 넘어 파이프에 가해지는 세부적인 영향을 측정하고자 96개의 센서를 파이프에 설치하는데, 이러한 방식의 실험은 전 세계에서 코넬대에서만 진행 가능하다.
실험 결과 아피즈 상수도관은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자 처음 설치한 것보다 1.9%가량 늘어나면서 지진에너지를 흡수, 지반 변형의 95%를 수용하기에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는 규모 5.7∼7.1에 해당하는 강진에서도 상수도관이 이탈하지 않고 95%의 성능을 구현한다는 의미다. 코넬대에서는 최종 실험 결과 일반적으로 80% 이상을 기록하면 우수한 제품이라는 평가를 하는데, 아피즈의 성능은 압도적으로 우수한 결과를 낸 것이다.
PPI평화의 아피즈 상수도관은 이미 국내외에서 성능을 인증받아 널리 적용되고 있다. 2014년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에서 개최하고 50여개국 15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한 ISO/TC 138(플라스틱관 국제표준화) 총회에서 아피즈 수도관은 ISO 국제표준으로 발표, 정식 문건으로 지정됐다. 이는 한국이 1964년 ISO 정회원 국가로 가입한지 50년, 독일에서 PVC파이프가 탄생한지 70년 만에 발표된 새로운 표준으로 의미가 크다.
국내에서는 평택 주한미군기지(300㎜ 메인 송수관 및 전규격), 당진 서해대교(노출 상수관로 250㎜), LG화학 여수공장 화학 폐수배관(플랜트관 250㎜) 등에 시공됐다.
이종호 PPI평화 대표는 “아피즈는 뉴질랜드 켄터베리 지역을 강타해 GDP의 20%에 달하는 피해를 발생시킨 규모 5.7∼7.1의 강진에서도 95%의 성능을 구현하는 내구성을 자랑한다”면서 “국내외에서 지진 발생 시 아피즈가 상수도관 안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수아 기자] [ⓒ e대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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